'님'이라 부릅시다...어느 SW기업의 문화혁명

투비소프트, 수평적 조직 문화 구축 위해 호칭파괴

일반입력 :2013/11/24 10:33    수정: 2013/11/25 08:13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의 말처럼 누군가를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는 달라질 수 있다. 자녀가 있는 홍길동씨는 누군가에는 누구누구 아빠로, 또 누군가에는 홍길동씨로, 다른 또 누군가에게는 그냥 길동이로 불릴 수 있다. 같은 사람을 부르는 건데도, 뉘앙스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누구누구 아빠와 길동이로 부르는 사람이 홍길동씨가 똑같은 존재로 다가올 수는 없는 법이다.

사회 생활로 넘어오면 호칭은 더욱 살벌하게(?) 느껴진다.

내놓고는 아니지만 사회 생활에서 호칭이란, 사실상 먹고사니즘을 해결해야할 봉급쟁이들간 권력 관계를 상징한다. 말단사원에게 사장님은 생사여탈권을 쥔 지배자로, 부장님과 과장님은 시키는대로 해야할 '복종의 대상'으로 비춰질 때가 많다. '까라면 까'로 대표되는 군대식 상명하복 구조는 국내 기업 문화에도 깊숙히 똬리를 틀었다.

군대와 가족이 결합된 조직 문화를 앞세워 국내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일정 부분 강화할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군대코드'만으로 지금까지의 성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명하복 구조, 업계 용어로는 '수직적인 조직 구조'를 수평적인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권력관계를 상징하는 '호칭'의 파괴도 수평적인 조직을 상징하는 문화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동료들을 그냥 '님'이라고 통일해서 부르는 회사들도 부쩍 늘었다. 인터넷 기업들이 이같은 분위기의 선봉에 섰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카카오, 네오위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을 고객으로 둔, 이른바 B2B형 IT 회사들에서 호칭을 빼고 그냥 님이라고 부르는 풍경은 여전히 낯간지럽고(?) 낯설다. 기업 특성상 기획자나 마케팅보다는 영업맨들이 활동폭이 큰 상황에서, 그냥 '님' 소리만 들리는건 무척이나 어색한 장면이다. 유명한 외국계 IT 기업들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업과 공공 기관을 상대로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국내 업체 하나가 유연성과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증대를 명분으로 내걸고 서로를 님으로 부르기로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뽑아들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UX·UI 플랫폼을 제공하는 투비소프트가 주인공이다.

투비소프트는 지난해 조직 문화 혁신을 위해 TF팀을 구성했다. 직원들 개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설문 조사를 통해 사내 호칭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 지 의견을 모았다. 결론은 '님'으로 정해졌다. TF팀이 내놓은 결과물을 근거로 투비소프트는 직위와 직급에 상관 없이 모든 임직원들이 서로를 'OO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난해 12월쯤의 일이다.

구체적인 변화는 올해부터 본격화됐다. 투비소프트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호칭 변경을 위한 시험 운영기간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1일부터 투비소프트는 팀장과 그룹장 같은 직책자를 제외하면 모두 '님'이 됐다.

투비소프트 김정희 팀장은 호칭을 '님'으로 변경한 후 수직적 조직 체계 속에서 이뤄지기 어려울 수도 있는 아이디어 제안이나 의견 및 정보 교류가 보다 자유롭고 원활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님'이라고 부르니 연차가 어린 직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존대말을 하게되고 강압적인 지시를 하지 않게 되더라고도 덧붙였다.어제까지 부장님으로 부르다가 곧바로 그냥 님으라고 부르는건, 부르는 사람이나 불리는 사람 모두에게 민망한 일일 수 있다. 투비소프트 역시 아직까지 혼선이 있는게 사실이다. 특히 회사를 오랫동안 다닌 부장, 과장들이 어느 순간 '님'이 된다는 것은 기득권을 내려 놓는 양보가 필요하다.

경력과 회사내 위치를 표시해 주던 직급이 없으니 대외적으로 활동할 때 설명하기가 어렵다. 고객한테도 무턱대고 '님'이라고 불러달라 할 수는 없다. 이를 위해 투비소프트는 대외 활동에서 불가피하게 호칭 사용이 필요한 경우를 위해, 경력과 연차에 따라 ‘선임’, ‘책임’, ‘수석’ 등의 대외 호칭을 보완했다.

투비소프트의 호칭 파괴 시도를 쇼맨십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경쟁력있는 조직 문화를 갖기 위한 일환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

투비소프트는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3년간 전문 경영컨설팅 업체를 통해 체질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변화를 위해 경영진이 선봉에 섰다는 얘기다.

투비소프트는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른 제도들도 도입했다. 아이디어 제안 제도도 그중 하나다. 투비소프트 직원들은 누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제안할 수 있다. 투비 지식포럼을 통해 경력·연차에 상관 없이 사내에 다양한 전문가들의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내 전문가 양성을 위한 지원자들을 모집했다. 인재 육성과 개인 역량 강화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투비소프트는 작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로 구체화되어 탄생하기까지에는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사고의 발상, 제한 없는 육성의 기회가 있어야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산출물의 가치와 형태는 무한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에게는 더욱 중요하다며 SW회사에서 수평적 조직 문화가 싹터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호칭을 파괴하고 제도만 도입한다고 조직 문화가 그냥 수평적으로 바뀔리는 없다. 꾸준함 그리고 은근과 끈기가 요구되는 일이다.

관련기사

지디넷코리아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인 전규현 ABC테크 수석 컨설턴트는 서열을 없애고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 방식 자체도 바뀌어야 한다. 조직뿐만 아니라 프로세스, 시스템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 제도만 바꿔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모든 문화는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며, 연관된 모든 문화를 같이 바꿔야 하고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규현 수석 컨설턴트는 변화는 1,2년에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고 회사가 지속되는 한 끊임 없이 투자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